Column

민주주의와 과두제의 철칙 - 가족여행을 예시로

서리나 2022. 1. 25. 18:00

 2인 이상의 반복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회집단이나 공동체 집단에서는 정치가 발생한다.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서 혼자 있던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가 표류한 흑인 노예를 만나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2인의 사회집단이 형성된다. 그들이 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견 차이를 논의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은 정치활동이다. 이처럼 정치는 공동체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활동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3인 가족이 가족여행을 간다고 가정해보자. 목적지를 어디로 할 것인지, 숙박은 편하게 잘 수 있는 호텔과 저렴한 호스텔 중 어떤 곳을 이용할 것인지, 계획을 철저하게 세울 것인지 아예 세우지 않을 것인지 등 논의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가족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두 존중하는 가정이라면 3인 모두가 정치활동의 주체가 될 것이고, 가부장적인 가정이라면 정치활동의 주체는 아버지가 될 것이다. 어떤 가정이 옳은 가정일까? 가족여행과 그 밖의 다양한 예시들을 이용해서 민주주의 이론과 과두제의 철칙 중 어떤 주장이 옳은지, 그리고 두 개의 주장 중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피한지 아니면 접합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서술하려고 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정치활동의 주체가 되는 경우는 민주주의 이론과 부합한다. 민주주의 이론은 권력 주체가 일반 대중이 되어 공동체 집단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본다. 정치활동의 주체가 아버지가 되는 경우는 소수의 지도계층이 정치 공동체 집단을 이끌어 가는 과두제의 철칙 이론과 부합한다. 과두제의 철칙 이론은 모든 사회조직은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전략적이고 기술적인 필요 때문에 지도계층에 의해서 운영되는 형태를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민주 정치의 불가능성을 지적한다. 특히 규모가 큰 집단일수록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기 더욱 어렵다고 본다.

민주주의 이론과 과두제의 철칙 중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는 과두제의 철칙이 옳다고 생각한다. 과두제의 철칙이 민주주의 이론을 비판한 것처럼, 사공이 많은 배는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민주주의의 이상과 비전은 구성원들의 평등이다. 모두가 참여하는 정치이다. 이 이론대로라면, 모든 정치 결정을 해야 될 때마다 전 국민 투표를 개최해서 다수결의 원칙대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해야 한다.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더 치명적인 두 가지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 모든 선택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친구관계인 10명이 기다리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기다리고 있던 버스는 15분 후에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지금 막 도착하는 버스는 목적지로 이동하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린다. 어떤 버스를 타는 것이 더 효율적인지에 대해서 10명의 의견을 모두 듣고 논의하고 결정하기 전에 후자의 버스는 이미 떠나버릴 것이다. 둘째, 올해 있었던 21대 총선 투표율은 66.2%였다. 100명 중 약 66명이 투표했다. 후보가 많을수록 과반수는 터무니없이 적어진다. 4개의 후보지가 있다고 가정하면 17명이 과반수가 될 수도 있다. 이 말은 가장 최악의 선택지가 어쩌다 보니채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라는 말 뒤에는 사실 대중선동가들의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의도가 다분할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대중들을 현혹시키는 뛰어난 말재주를 사용해서, 17명이 자신의 이익과 부합하는 투표를 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대중선동가들에게 약간의 운이 따라준다면, 말도 안 되는 정책도 채택될 수 있다. 가장 민주적인 방식은 선동가들이 자신들의 이익, 더 나아가 전제주의를 이끌어내는데 이용되기 쉽다. 그에 비해 과두제의 철칙은 권력의 주체가 소수 지도계층이기 때문에 정책 결정에 있어 적절한 타이밍을 놓칠 염려와 대중선동가들의 등장의 위협 횟수는 훨씬 적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민주주의는 틀리고 과두제의 철칙이 전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각 정책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휘둘리기 쉬운 민주주의 이론보다는 어쨌든 소수 지도계층에 의한 명확한 목표가 있는 과두제의 철칙이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이다. 과두제의 철칙은 독재의 위험이 크다. 지도계층이 누구냐에 따라, 그들이 어떤 이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가령 백성을 으뜸으로 여긴 조선 정조의 승하 이후, 정치 세력 간의 균형이 붕괴되었고 소수의 유력 가문이 권력과 이권을 독점하면서 농민들의 삶은 급격하게 핍박해졌다.

구성원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공동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과두제의 철칙을 접합해야 하고, 이는 적당한 수준의 민주주의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민주주의는 수평적 사회를 목표로 한다. 존 로크의 사회계약론은 개인 자유를 보호할 목적으로 구성원들이 일부 자유를 국가나 정부에 위임하고, 만약 국가나 정부가 지켜주지 못하거나 훼손할 경우 시민들이 시민혁명권을 일으키는 등 계약을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계약론의 이론을 빌려서, 민주주의의 이상인 구성원들의 평등과 안정적인 공동체를 목적으로 소수 지도계층에게 일부 권한을 위임하고, 그들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감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3인 가족이 가족여행을 세우는 방법 중 옳은 것은 가족 구성원들의 의견들이 모두 존중되는 최고 수준의 민주적인 방법도 아니고 가부장적인 가정의 아버지가 독단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방법도 아니다. 그러나 모든 부분을 하나부터 열까지 평등하게 토론하면서 여행 당일까지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것보다는 가부장적인 가정의 아버지가 독단적으로 계획을 완성시켜서 여행을 갈 수라도 있는 후자의 방법이 조금 더 낫기는 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부장적인 가정의 아버지가 가족 모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규칙 안에서 아버지의 판단하에 계획을 세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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